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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분원 연구주제 발굴 브레인 스토밍 "나는 연구자다"···계급장 떼고 연구로만 대화
- 등록일 : 21-06-22
- 조회수 : 2293
[인터뷰] 장준연 KIST 강릉 분원장
강릉분원, 계급장 떼고 과제 아이디어 배틀戰 열어
선후배 함께 미래연구주제 발굴
“천연물 기반 건강기능식품 천연물 3종, 신약개발 목표”
"계급장 다 떼고 기관 주요사업 연구과제를 맡을 책임자를 뽑을 겁니다. 미래 우리에게 필요한 연구라면 격식, 형식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아이디어가 좋으면 선임연구원도 과제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KIST 강릉 천연물연구소가 18년 역사상 처음으로 계급장 다 떼고 기관 주요과제 선정을 위한 아이디어 배틀을 추진한다. 일명 '(가칭)나는 연구자다' 프로젝트다. '강릉분원 미래 연구주제발굴'을 주제로 6월 말 연구원 전원이 모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강릉분원 미래과제를 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이날 하루는 특별히 외부 출장도 통제한다. 참가자, 발표형식 등 아무런 제한 없다. 하루로 모자라면 다음 날까지 이야기해 끝장을 본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주요사업 연구과제는 연구센터 단위로 센터장이나 시니어급 연구원 등이 선배가 기획해 후배들이 연구하는 탑다운 형식으로 진행됐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밀실 연구과제'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아이디어를 선배가 냈으니 연구과제책임도 통상 선배들 몫이었다. 선배가 주도하는 연구가 주가 됐던 연구실 분위기가 이번 프로젝트로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 분원장이 도전적인 과제를 외치는 이유는 강릉분원이 사람으로 치면 곧 성인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로 18주년을 맞은 만큼 분원장이나 임원들이 정한 성향이나 비전이 아닌, 이곳에서 평생 일할 연구자들이 스스로 가치관과 철학을 끌어내 연구를 주도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그는 "연구소원 비전은 잠시 머무르다 갈 분원장이나 보직자의 손에서 만들어지면 안 된다. 여기에 뼈를 묻을 직원들의 가치관과 철학을 끌어내야 누가 와도 흔들 수 없는 장기계획을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발굴하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 연구책임자를 맡고 과제를 주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도전적인 과제가 나온다. 그러려면 기존의 관행을 깨야 한다"며 "선후배 간 수평적 소통을 통해 기회를 공평하게 가지면서 과정은 투명한 연구과제와 성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릉분원은 국가균형발전과 강원지역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설립됐다. '천연물'을 기반으로 의약품, 건강식품 등 개발을 위해 기초원천기술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전주기 연구를 수행한다. 특히 강원지역에 풍부한 천연물 자원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천연물 소재를 발육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미래농업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KIST 본원에서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으로 오랫동안 연구에 몸담았던 그가 강릉분원장으로 온 지 반년이 넘었다. 강원도 출신으로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만큼 지역에 대한 사랑도 깊다.
반도체소자와 천연물 연구소의 만남은 어떤 시너지를 낼까.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몸 상태 조절까지 완벽하게 마친 장준연 분원장을 만나 강릉분원의 비전과 계획 등을 들었다.
Q.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직을 약 6년간 역임하셨다. 강릉분원은 천연물 연구소로 연구접점이 많지 않을 텐데.
A. 고향에 분원이 생겨 늘 오고 싶었지만, 연구분야가 달라 오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 분위기가 바뀌었다. 천연물이 바이오를 넘어 스마트팜 연구로 확장되면서 작물의 생육조건이나 광합성에 필요한 빛의 양, 수분, 온도, 습도 등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ICT, AI, 빅데이터 기술 등이 필요해졌다. 여기에 필요한 기술이 반도체다. 실제 본원의 차세대반도체연구소를 다니던 연구자 한 명이 스마트팜 기술에 푹 빠져 이곳으로 이직하기도 했다.
스마트팜은 총 3세대로 나뉜다. (1세대: 디지털화+ 농민이 직접 원격 수동제어/ 2세대: 빅데이터나 AI(인공지능), IoT 기술로 생육 관리+사람 관리/ 3세대: 완전 무인화) 우리는 지금 1세대 후반기로 빅데이터, AI 도입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본원에서 차세대 반도체연구소 연구원과 강릉분원 연구원들과 논의해 오랫동안 협업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6월 초부터 새로운 과제도 시작한 상태다.
강릉분원 모습
Q. 임기 후 분원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A. 먼저 3가지를 위한 전략을 세웠다. ▲미래 강릉분원이 어떤 위상을 가져야 할지 ▲지역에 사랑받는 기관이 되기 위한 방안 ▲논문에 그치지 않는 기업과 국가에 도움 되는 기관 등 3가지다.
강원도는 국가 총 R&D 연구비의 1% 이하밖에 오지 않아 과학불모지나 다름없다. 출연연도 3개 밖에 없고, 제대로 R&D하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 작은 역량이지만 우리는 지역 기여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는다. 주변 출연연과 강원도의 대학을 찾아다니며 산학연과 산업계 사람들, 시청관계자 등을 만났다. 당장 큰 변화가 없더라도 씨앗을 뿌렸으니 인식의 변화를 통해 공동으로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Q. 성과도 있었나.
작은 성과도 있었다. 그동안 강릉분원은 패밀리 기업(KIST가 기업에 기술적 지원을 해준다)으로 영동 등 일부 지역의 천연물, 바이오 식품기업만 있었다. 최근 그 범위를 강원도 전체로 넓혔다. 가입조건도 전 분야 기업으로 넓혀 사료, 바이오매스, 건설회사 등 여러 기업이 새로 선정됐다.
기존의 특허출원 지원, 최신연구 동향 공유, 국가 분석 장비를 통한 지원뿐 아니라 우리가 도움 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주변 출연연과 함께 공유해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Q. 2023년 곧 20주년이다. 목표와 비전은.
A. 강릉분원은 설립한 지 18년이 됐다. 그동안 '역량이 적으니까', '생긴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면서 적당히 넘어가는 일이 많았던게 사실이다. 이제 강릉분원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비전을 가져야한다. 누가 기관의 지도자가 되던 연속성 있는, 흔들리지 않는 그런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 여기에 뼈를 묻을 직원들의 철학과 가치관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여러 일을 추진 중이다.
먼저 건강기능식품을 만들 수 있는 천연물 성분을 3개 이상을 독자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2028년 25주년에는 천연물로 약 2종류를, 2033년 30주년에는 천연물을 원료로 하는 글로벌 신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 목표는 경영진이 아닌 연구원들이 제시한 것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 없지 않나. 무수히 많은 도전을 통해 연구원들의 꿈을 이루도록 후원하겠다.
강릉분원 스마트팜에서 자라는 토마토.
Q. 본원과 달리 분원은 젊은 연구원 비율이 높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나이 상관없이 능력있는 연구원의 자율성과 수월성을 보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텐데.
A. 맞다. 우리는 책임연구원(선배)보다 선임연구원(후배) 비율이 높아 항아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본원은 역삼각형이다.
과거 과제발굴은 센터장이나 시니어가 모여 주로 탑다운으로 연구해 젊은 연구자들에게 의사반영 기회가 없었다. 후배들은 공감대 없이 선배들이 하라는 연구를 해야 했다.
도전적인 연구를 위해 이런 기존 관행을 깨려한다. 아이디어가 좋다면 누구든 연구책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도 늘 이야기한다.
6월 말 예능 '나는 가수다'처럼 '미래 연구주제발굴'을 주제로 브레인스토밍 '나는 연구자'를 추진한다. 계급장 다 떼고 연구로만 대화한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책임, 선임 상관없이 과제책임자로 선정하고 주요사업으로 3년간 밀어줄 계획이다.
강릉분원 총 연구 인원이 40여명이다. 센터로 나뉘어있긴 하지만 천연물을 주제로 연구하는 만큼 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선정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인력이 있다면 센터 상관없이 협업하도록 하고, 다른 연구원들은 센터별 고유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평적인 소통을 만들고, 공평한 기회와 과정으로 만든 연구과제 추진으로 제대로 반석 위에 올릴 수 있는 연구성과를 만들겠다.
Q. 천연물을 통해 재밌는 연구들도 많이 했다. 그동안 성과, 향후 연구 추진계획은.
A. 고부가가치 천연물이 정말 많다. 그중 하나가 소아 뇌전증 치료제에 쓰이는 의료용 대마다. 대마는 마리화나와 헴프로 분류되는데, 저마약성 품종군이면서 해외에서 의료목적으로 사용되는 헴프의 주성분인 CBD(칸나비디올)원료를 사용하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 국산 헴프 품종 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또 다른 연구로는 비만을 억제하는 청경채가 있다. 에스키모인들은 채소를 키우지 못하다 보니 동물의 지방을 많이 섭취해 비만으로 수명이 짧다. 우리는 생육조건을 조절해 청경채에서 비만을 억제하는 성분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레시피를 완성했다. 이 레시피를 스마트팜을 통해 키울 수 있도록 연구·개발해 캐나다에 제공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스마트팜은 우리가 평소 먹는 과일을 생산하기에 설비비용이 비싸다. 우리 스마트팜에 토마토도 키우고 있긴하지만 바이오 소재를 키우고자 한다. 예를 들어 마데카솔에 들어가는 병풀은 외국의 토양과 기후에 맞춰 자라기 때문에 전부 수입을 해야 한다. 이런 수입하는 고부가가치 천연물을 인공적인 환경에서 키우는 연구를 하는 것이 스마트팜인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팜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팀으로 고부가가치 천연물을 키우는 연구도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현재 의약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난치성 만성질환이 있다. 대부분 약은 합성 약으로 부작용이 있어 오랜 시간 임상이 필요하다. 천연물은 금방 낫지는 않지만, 부작용도 거의 없다. 천연물을 과학적 기법과 빅데이터를 통해 빠른시간 내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꾸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천연물 연구 패러다임을 만드는데 기여하겠다.
KIST 강릉분원이 항비만 성분인 글루코시놀레이트의 함량을 늘린 기능성 청경채를
스마트팜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Q. 앞으로 강릉분원의 역할은.
A. 강릉분원은 매년 많은 기술이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만 그치면 안 된다. 천연물 연구소에서 글로벌 연구소를 가려면 수월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미래지향적 연구를 해야 하고, 좋은 논문에 젊은 연구자들의 결과가 실리고, 기업에 이전돼 상용화되는 등 전 과정이 반복되면서 강릉분원이 천연물 분야에서 인정받는 연구소가 될 수 있도록 초석을 깔고 싶다.
지역주민들에게 KIST 강릉이 도움이 되는 기관이 되고 싶고, 기업들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와 함께 우리 연구자들이 자랑스럽게 '나는 KIST 연구자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자존감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기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연구소원 비전은 잠시 머무르다 갈 분원장이나 보직자의 손에서 만들어지면 안 됩니다. 여기에 뼈를 묻을 직원들의 가치관과 철학을 끌어내야 누가 와도 흔들 수 없는 장기계획을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