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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명보야 밥 먹자"에서 깨치는 대담한 융합 - 김현우 KIST 융합연구정책센터 소장
- 등록일 :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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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이 10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2002 한일월드컵을 기억하기에 월드컵은 축구대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일 공동개최가 결정된 이듬해인 1996년 한국은 최대 외환위기를 맞았다.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경제적 주권까지 포기하며 195억달러의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다. 금 모으기 운동과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IMF 차관을 조기상환하며 2001년 8월 IMF 관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심리적 상처는 깊었고 땅에 떨어진 자존심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2002년 대표팀을 맡은 히딩크 감독은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소통을 방해한다고 봤다. 선후배를 섞고 서로 이름을 부르게 했다. "명보야 밥 먹자." 지금도 회자되는 이천수 선수의 일화는 기적을 몰고온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대표팀은 4강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기적은 경기장을 넘어 퍼져나갔다. 2000만명이 참여한 거리응원에서 사고는 물론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경기장 안팎에서 세계를 감동시키며 한일월드컵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경제위기의 상흔을 깨끗이 떨쳐내는 순간이었다.
20년이 지난 2022년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된 지도 10여 년이다. K팝과 K드라마는 세계를 휩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격상했다. 1964년 UNCTAD 설립 이후 첫 사례다. 하지만 '축적의 길'을 제시한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안주할 때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최고 수준의 자체기술을 보유했다지만 아직 한국 고유의 선도기술이 없음을 지적했다.
선도기술 없는 선진국 위상은 위태롭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한국 경제가 2026년에는 브라질, 2036년에는 인도네시아와 러시아에 추월당할 것으로 봤다. 이미 시작된 생산인구 감소, 격화하는 기술패권 전쟁 등 악재가 즐비한 상황이다. 선진국을 넘어 선도기술을 보유한 선도국가로 나아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선도국가 경쟁에서는 성공을 보장하는 판단과 발전경로를 엿볼 기회가 없다. 선도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될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도움을 줄 준거가 절실하다. 무엇에 도전할 것인가. 과정에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과의 잠재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하고 실현할 것인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간 히딩크식 대담한 소통이 필요한 3가지 물음이다.
먼저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인문사회 융합은 광활한 지(知)의 최전선에서 나침반이 된다. 우리 사회, 국가, 인류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과학기술로만 해결할 수 없었던 현안을 해결할 방안을 제공한다. 기술의 기대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길의 모색을 돕는다. 근본적으로 이 연구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한다.
인문사회의 오랜 고찰의 결과는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기준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성과라도 연구의 진실성과 생명체 연구의 윤리 등을 준수하지 않았다면 선도기술로 인정받을 수 없음은 글로벌 규범이 된 지 오래다. 줄기세포 연구에서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할 순 없다. 선도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윤리적 올바름에 한 치의 양보 없이 엄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기술이라 해서 잠재가치가 언제나 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초 IBM은 주목받던 의료 인공지능 '왓슨헬스'를 큰 성과 없이 매각했다. 화려한 기술에 매몰돼 사람을 잊은 것은 아닌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미래기술에 우리 삶과 사회를 짜 맞출 수도 없다. 인류의 행복과 가치에 부합하도록 기술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는 인문사회의 역할이 필수다.
선도국가라는 최고봉의 입구에 자리한 선진국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미래는 등반가와 셰르파 역할을 서로 바꾸며 도전에 나서는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에 있다.
출처 : 머니투데이(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20813051457550)